美 '디스커버리' 도입하면서 탐정업법 법제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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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뷰] 美 '디스커버리' 도입하면서 탐정업법 법제화해야
- 최승욱 편집인
- 승인 2023.07.03 19:10
'존 윅 4' 1대1 권총대결처럼 '무기균등의 원칙' 적용 제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내에서 192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존 윅 4'의 결말은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이 천신만고 끝에 1대1 방식으로 진행되는 최고회의 결투장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첫 번째 대결에서 숨진 자가 없자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두 번째 대결이 이뤄진다. 여기서도 둘 다 치명상을 입지 않자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세 번째 탄환이 장전된뒤 총성이 울린다. 존이 배에 총을 맞고 쓰러지자 그랑몽 후작은 자신이 직접 처리하겠다며 나선다. 존은 이를 예상, 3차 대결에서 쏘지 않았던 탄환으로 그랑몽의 머리를 맞춘다. 대결에서 이긴 존은 자유를 얻지만 성당 계단을 내려가면서 천천히 쓰러진다. 대결자의 지위나 재력에 관계없이 같은 무기로 정해진 원칙에 따라 겨루고 그 결과에도 승복한다면 이보다 더 공정한 제도는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중요한 민사소송은 원고와 피고 측이 서로 요구하는 모든 증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재판을 시작한다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로 진행된다. 합당한 이유 없이 상대가 요청하는 정보를 제시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거나 패소할 수 있다. 1대 1 대결처럼 무기균등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는데다 특허기술 탈취 등 증거의 대부분이 원고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구조적 편재(偏在)'를 해결하는 강력한 수단이란 평가를 받는다.
다투는 쟁점이 보다 명확히 정리되는데다 객관적 사실에 맞춰 재판이 진행돼 민사소송의 대부분이 정식 재판에 가지 않고 쌍방 간 합의에 의해 처리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증거를 훼손하거나 유출한다면 법원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리거나 담당 변호사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보니 소송 남발이 억제되고 협상을 유도하는 효과도 나타난다. 약점은 사실 확인이나 증거 수집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등 소송비용의 고가화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2007년 IT 서비스기업 Z4 테크놀로지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응용 프로그램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MS는 원고가 요청한 파일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가 이후 해당 파일이 발견되자 법원은 MS에 디스커버리 위반 제재로 징벌금과 상대방 변호사 비용으로 2700만달러를 원고에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장점에 주목, 국내 대기업이 '원정 소송'에 나서면서 미국 로펌이 잔치를 벌이는 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19년 미국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배터리 핵심 기술 유출'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LG엔솔은 결국 2021년 4월 2조원대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재판 전 증거조사를 의미하는 전자증거개시제도(e디스커버리)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민사소송 자료의 수집과 제출 책임을 당사자에게 맡기는 한국 법원이었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이었을 것이다. 피해를 주장하는 원고가 피고의 잘못을 입증해야 이길 수 있다보니 핵심적인 자료나 증거를 피고가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의료소송이나 행정소송, 환경소송, 지식재산권 분쟁 등에서 소송 당사자가 입증 실패로 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증거를 숨겨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 현실에서 누가 증거를 제출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과 한국시민교육연합, 한국탐정정책학회 주최로 3일 국회 의원회관 제 3세미나실에서 '형사사법체계의 변화에 대응한 탐정제도의 법제화 방향과 전략' 세미나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박승옥 변호사(전 배심제도연구회 회장)는 이날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의 현황 및 시사점과 탐정제도의 도입의 필요성 고찰' 발제에서 디스커버리의 장점으로 ▲사법절차에서 '진실 발견 능력' 극대화 ▲당사자들의 자율과 성실한 협력 강제에 따른 증거수집의 효율성 제고로 법원의 시간·노력 절감 ▲위반에 대한 강력한 제재로 제도 작동 보장 ▲정당한, 신속한, 저렴한 해결이란 민사소송 목표 달성으로 사법에 대한 국민 신뢰 획득을 손꼽았다.
박 변호사는 "진실 캐기의 철저 여부가 소송의 승패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며 "디스커버리의 모든 영역에서 탐정에 의한 사실 자료 수집은 당사자와 변호사로 하여금 충실한 디스커버리를 실행, 높은 수준의 진실 발견을 달성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디스커버리에서 탐정의 활용은 이미 자연스러운 것으로 되어 있다"며 "한국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맞춰 탐정제도와 탐정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제한 및 감독 의무의 설정 위에서 탐정업법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의 수사사건 처리가 지체되는데다 실효성을 갖춘 증거 확보를 노린 고소·고발 남발로 인한 '민사사건의 형사화'까지 겹치면서 경찰의 업무부담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대로 두면 승진시험 준비를 할 수 없는 수사 부서 기피 풍조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 변호사의 제언처럼 합법적 범위에서 탐정 업무 수행이 이뤄지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상수 가톨릭대 행정대학원 탐정학 전공 주임교수는 이날 '한국형 탐정제도 법제화를 위한 방향과 전략'에서 "대한변호사협회는 민사절차에서 정식사실심리에서의 증언을 미리 보전하기 위해 '법정 외 증언 녹취(Deposition)'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디스커버리 절차라며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특허청은 2020년 업무계획에서 특허권자 보호를 위해 현재 실행 중인 자료제출 명령제도와 자료보존 의무의 실효성 강화와 함께 법원이 지정한 기술심리관과 변호사, 변리사 등이 특허침해자의 사무실 등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햤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와 관련, 이상수 한국탐정정책학회 회장은 "실질적으로 조사전문가인 탐정이 시실조사를 담당할 때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디스커버리 제도는 탐정업법 제정이 수반될 때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탐정의 불법활동에 대한 규제 목적을 넘어 건전한 민간조사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탐정업의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하순봉 의원이 공인탐정에 관한 법률안을 시작으로 제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매 국회에 민간조사업법 또는 공인탐정법으로 발의가 되었지만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된 바 있다. 등록업무를 둘러싸고 법무부와 경찰청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컸던데다 탐정업에 대한 국민인식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이같은 현실을 감안, 김용판 의원은 영상 개회사를 통해 "탐정업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 36개국에서 이미 직업으로 인정받아 국가기관의 개입이 어려운 개인의 권익영역인 민형사상 소송 증거 수집 및 실종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0년 8월 신용정보법 개정 시행으로 탐정업이 자유업종으로 합법화하면서 탐정 관련 민간자격과 탐정업체 수 및 종사자 수가 증가하는 등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탐정업과 관련한 입법 및 그에 따른 국가에 의한 관리 감독 체계가 이뤄지지 않아 탐정의 음성적 활동으로 국민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저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와 대법원 부담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감안, 사실심 충실화와 재판 신뢰 제고를 위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서 제출 의무자를 '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서 '문서를 점유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고 당사자의 문서 제출 신청이 일정한 요건을 갖춘 때에는 상대방이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을 위반하거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문서를 훼손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경우 제재를 강화한다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한다은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는 이날 토론문에서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통해 '소송에서 이기려면 증거를 숨기면 된다'는 소송에 대한 인식을 타파하고 소송 당사자의 소송을 대하는 자세가 더욱 적극적,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디스커버리 제도가 정착되고 탐정제도 또한 점차 정립되는 경우 당사자가 증거 수집을 위해 문의하는 사설 기관에 따라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기면서 전체적으로 소송비용이 더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타당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흥신소 등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유사 업체로 인한 인권 침해 우려 등을 감안, 탐정제도와 디스커버리를 연계시켜 발전을 도모할 가치는 충분하다. 국회는 법원과 법무부, 검찰, 경찰, 변협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 관련 법안을 도출하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 국회 임기 만료로 탐정업법이나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자동폐기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는 것은 곤란하다.
제도를 신설하면 정착에 이르기까지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골치 아픈 숙제라고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본격적 논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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